1994년 5월 1일 이몰라 서킷에서 열린 산마리노 그랑프리 결승에서 사고로 세상을 떠난 천재 드라이버 아일톤 세나의 20주기를 맞이하여 각지에서 추모분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페라리의 회장인 루카 디 몬테제를로가 "산마리노 그랑프리 직전에 세나와 만나 페라리 입단을 논의했었다"고 밝혀 흥미를 주고 있다.
-- 멕라렌 시절의 아일톤 세나 (사진:위키피디아) --
몬테제를로는 산마리노 그랑프리가 열리기 몇일 전인 4월 27일 볼로냐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세나와 만났었다면서 "당시 세나는 94년 시즌부터 시행된 F1 머신에서의 전자장비의 과다 사용 금지에 페라리가 적극 참여하여 드라이버의 스킬이 중요해진것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면서 "우리는 세나가 페라리로 이적하여 활동하고 나서 페라리에서 자신의 현역 생활을 깔끔하게 마감하는 것들에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산마리노 그랑프리 이후 다시 만나서 세부적인 것을 논의하기로 했었다. 세나는 분명 페라리에서 현역 생활을 마감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볼로냐 시내 중심부로부터 산마리노 그랑프리가 열리던 이몰라 서킷까지는 차로 3~40분 거리의 가까운 곳이다)
또한 몬테제를로는 "세나의 드라이빙 스타일에 높은 평가를 해왔다. 그는 다른 위대한 챔피언들과 마찬가지로 승리에 대한 강한 의지와 절대 지치지 않고 완벽을 추구했으며 언제나 발전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 드라이버였고 그와는 대조적으로 항상 친절하고 수줍은 많은 평상시의 모습을 보인 사람이었다"고 밝혔다.
-- 페라리 회장 루카 디 몬테제를로 (사진:ESPN) --
한편, 1989년부터 1991년 초까지 페라리의 팀 매니저로 활동했던 체사레 피오리오는 최근 자신의 자서전을 통해서 1990년에 여러차례 세나와 만나 페라리 입단을 추진했었고 계약까지 했었다고 밝혔다.
피오리오는 "1990년 3월 25일에 열린 시즌 제2전 브라질 그랑프리가 끝난 뒤 상파울로에 있던 세나의 집에서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매니저 및 변호사등이 없이 단독으로 세나와 만났다"면서 "이때 거의 계약조건의 80%를 합의했었고 헤어졌었으며 같은 해 7월 8일에 있었던 프랑스 그랑프리때를 전후하여 세나의 모나코 집에서 다시 만나서 세부적인 조건을 계속 논의한 끝에 페라리 입단을 확정지었으며 계약서까지 작성했었다"고 밝혔다.
-- 피오리노가 그리스 "GO CAR"에 공개한 세나와의 계약서 사본 --
그러나 피오리노는 "계약을 체결한 뒤 당시 페라리 회장이었던 피에로 푸사로 및 당시 팀의 주전드라이버로서 세나와 다시 한 팀이 되는 것을 껄끄럽게 여겼던 알랭 프로스트와의 대립으로 인해 결국 세나와의 계약은 파기되었다"고 밝혔다.
1960년생이었던 아일톤 세나는 1984년 톨만 소속으로 F1에 데뷔한 이후 이듬해인 1985년 로터스팀으로 이적하여 첫 승을 기록한 뒤 1988년부터 멕라렌 소속으로 활동하면서 88,90,91년 세계 챔피언이 된 뒤 1994년 윌리엄즈로 이적했다가 그 해 시즌 제 3전이던 산마리노 그랑프리 경기중 추돌사고로 세상을 떠난 드라이버이다. 특히 지금도 F1 역사상 최고의 실력과 재능, 열정을 겸비한 드라이버로 꼽히는 드라이버이다.
-- 세나가 F1에서 마지막 우승을 했을때 탔었던 1993년형 멕라렌 MP4-8 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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